당진 승전목에서 느낀 늦가을 고요와 충절
늦가을 오후, 하늘이 맑게 개던 날 당진 면천면의 승전목을 찾았습니다. 조선시대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 들었는데, 실제로 마주한 순간 단아한 분위기와 단단한 기운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작은 언덕 위,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 사이에 ‘승전목’이라 새겨진 표석이 서 있었습니다. 주변은 고요했고,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고, 그 아래의 돌기단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엔 소박했지만, 그 안에는 나라를 지킨 이들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1. 면천면 마을길을 따라가는 길
승전목은 당진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 면천면 읍성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시골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었고, 가을의 논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길가에는 ‘승전목’이라 새겨진 작은 표지판이 있고, 언덕 위로 오르는 오솔길이 보였습니다. 주차는 입구 맞은편 공터에 가능했고, 걸어서 3분이면 유적지에 닿았습니다. 주변은 한적했고, 들판과 산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길을 오르는 동안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고, 멀리서 종소리처럼 들려오는 새소리가 귓가에 남았습니다. 짧은 길이지만, 걷는 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2. 유적의 구조와 고요한 형태
승전목은 크지 않지만 정갈하게 정비된 역사 유적지입니다. 중심부에는 비각이 하나 서 있고, 내부에는 ‘면천승전비(沔川勝戰碑)’라 새겨진 비석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비각은 붉은 기둥과 회색 기와지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단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문을 통해 바라본 비석의 글씨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뚜렷했고, 주변에는 낮은 돌담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바닥은 잔디로 덮여 있었고, 잡초 하나 없이 잘 관리되어 있었습니다. 햇빛이 비각의 처마 아래로 길게 드리워지며, 기둥의 붉은색이 더욱 깊게 빛났습니다. 단아한 구조 속에서도 엄숙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3. 승전목의 역사적 배경과 상징
승전목은 조선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공주·홍성·면천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당진 일대의 의병과 관군이 협력하여 반란군을 격퇴한 사건으로, 이후 왕의 명으로 이곳에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안내문에는 당시 전투 경로와 참여 인물들의 이름, 비석의 건립 연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승전목’이라는 이름은 단지 나무 한 그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승리를 기념하며 충절의 정신을 이어온 상징이었습니다. 조용히 서 있는 비석 하나가 지역의 역사와 자긍심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4. 주변 풍경과 자연의 인상
유적지를 둘러싼 자연은 소박하지만 조화로웠습니다. 언덕 아래로는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멀리서 산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바람이 불면 억새가 일렁이고, 나뭇잎이 비각의 지붕 위로 떨어졌습니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며 비석의 표면을 부드럽게 밝혔고, 그 빛이 돌의 질감과 어우러져 깊은 색을 냈습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냄새, 흙길의 감촉,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공간의 고요함을 완성했습니다. 인위적인 장식은 없었지만,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그 단정한 풍경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5. 인근 명소와 연계 코스
승전목을 둘러본 후에는 가까운 면천읍성과 함께 관람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두 곳은 차로 5분 거리이며, 조선시대 면천 고을의 행정과 방어 체계를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인근에는 한진포구와 대호방조제가 있어, 역사 탐방 후 바다 풍경을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점심은 면천면 중심의 ‘면천한정식집’에서 제철 나물밥정식을 먹었는데, 담백한 맛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후에는 면천읍성의 성곽길을 걸으며 다시 언덕 위의 승전목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낮은 비각과 돌담이 들판 사이에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묵직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6. 방문 시 유의사항과 팁
승전목은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며, 관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비각 내부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바깥에서도 비문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오전 10시경 햇빛이 비석 전면에 고르게 닿아 사진 촬영이 가장 좋았습니다. 여름철에는 벌레가 많으므로 긴 옷차림을 권장하며, 겨울에는 언덕 위 바람이 강하니 방풍 재킷이 필요합니다. 주차는 입구 옆 공터를 이용할 수 있고, 길이 짧아 도보 관람이 편리했습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머물며 비석의 글씨와 주변의 바람 소리를 함께 느끼는 것이 이곳을 가장 깊이 경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당진 면천면의 승전목은 작지만 의미가 깊은 역사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건축물은 없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비석 하나와 주변의 바람, 그리고 나무의 그림자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단정하고 고요한 공간 속에서 충절의 정신과 공동체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잠시 머물며 눈을 감으면, 옛 병사들의 외침이 바람을 타고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다음에는 봄, 새잎이 돋는 시기에 다시 찾아 그 생동감 속에서 이 유적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고 싶습니다. 승전목은 역사가 단단히 뿌리내린, 당진의 조용한 자긍심이 깃든 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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